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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수업

역경을 딛고 꿈을 이룬 목이(사금파리 한 조각2)-초등 고학년 하브루타

by eye2024 2025. 8. 27.

안녕하세요.

반딧불 독서회 반디샘입니다.

20250825.

지난주에 이어 <사금파리 한 조각 2>로 수업을 했습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요즘 사람들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어요.

"두루미 아저씨, 어디를 떠나더라도, 여행하시길 빕니다."

-목이가 송도에 다녀오는 동안 사고로 돌아가신 두루미 아저씨를 생각하는 내용이 슬픈데 애써 태연한 척하는 모습이 대단하면서도 안타까웠어요. 짧은 문장 안에 의미가 많이 담긴 것 같아요.

송도까지 가서 왕실 감도관에게 이 사금파리 한 조각을 보여 줄 작정이었던 것이다.

-비록 참외 모양 꽃병을 깨졌지만 목이가 사금파리 한 조각을 들고 감도관에게 갈 마음을 먹은 뒤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앞으로의 모험이 더 기대되게 만드는 문장이었어요.

"어서 가서 겠어."

-정이 많은 문장이에요.

꽃병을 만든 이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고려 시대의 꽃병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니 더 궁금했어요.

"감도관 나리, 이건 사금파리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사금파리가 저희 선생님의 솜씨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 영감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느껴졌어요.

우리가 궁금한 질문과 대화

두루미 아저씨는 왜 죽는 순간까지 도자기 원숭이를 손에 들고 있었을까?

고려 시대 사람들은 여우를 왜 나쁜 존재로 생각했을까?

목이가 만약 깨진 도자기 조각을 들고 가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굳이 민 영감이 목이 보고 "넌 내 아들이 아니다, 고아 녀석이."라고 말해야 했을까?

감도관은 민 영감과 강 영감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만약 감도관이라면 사금파리 한 조각을 보고도 민 영감의 작품을 받아줬을까?

두루미 아저씨는 좋은 세상에서 두 발 건강하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만약 목이라면 강도를 만나고 일어난 일 때문에 송도에 가는 것을 포기했을까?

나라면 두루미 아저씨가 지어준 목이라는 이름 대신 '형필'이라는 이름으로 살까?

목이와 두루미 아저씨의 관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민 영감은 왜 갑지가 목이에게 도자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했을까?

가마의 주 재료가 흙과 대나무인데 불을 더 지피면 무너지지 않을까?

강 영감의 실력은 어느 정도였길래 감도관은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민 영감에게 주문을 맡기게 되었을까?

고려 시대 사람들은 여우를 왜 나쁜 존재로 생각했을까?

-여우가 생긴 것도 사납게 생기고 발톱도 있어서 사람들이 무서운 동물이라고 여긴 것 같아요.

-여우가 꾀가 많은 동물이다 보니 사람들이 그 꾀에 넘어가기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거 같아요.

-구미호 괴담이 있잖아요? 고려 시대에도 이런 여우와 관련된 괴담이 있었을 거 같아요. 여우가 재주를 부릴 줄 아는 동물이라서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을 거 같아요.

-구미호는 사람의 간을 100개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잖아요? 고려 시대 사람들은 그것을 굳게 믿고 있어서 여우에게 생명을 뺏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거 같아요.

-여우는 남자의 혼을 먹고 산다는 말을 믿어서 나쁜 존재로 생각했을 거 같아요.

-여우는 밤에 보면 눈이 번쩍거려서 너무 무서울 거 같기도 하고 구미호 괴담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위험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여우가 사납기도 하고 동화책이나 옛날이야기에도 안 좋은 이미지로 들어가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커럼포의 왕 로보'에서도 늑대는 가축을 잡아먹거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나쁜 동물로 여긴 것처럼 여우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그런 이미지가 된 거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늑대는 인간이 건드리지 않으면 해를 줄 동물이 아니었잖아요? 여우도 그러지 않을까요?

내가 만약 감도관이라면 사금파리 한 조각을 보고도 민 영감의 작품을 받아줬을까?

-그 사금파리 한 조각만으로도 충분히 민 영감의 실력이 드러난다면 저는 받아줄 거 같아요.

-저도 사금파리 한 조각에 드러난 솜씨가 훌륭하면 받아주고 그렇지 않으면 안 받아 줄 거 같아요.

-저도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도 쓸 수 있으면 받아 줄 거 같아요.

-실력이 좋으면 충분히 받아줄 거 같은데요?

감도관은 민 영감과 강 영감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강 영감이 아무리 상감 기법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도자기를 만들었다고는 해도 디테일이 떨어졌을 거 같아요.

-감도관은 뛰어난 예술품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평범한 도자기를 보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다 알아챌 거 같아요. 강 영감의 상감 기법 도자기가 뛰어나다 해도 예술적인 가치 면에서는 민 영감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정교함? 이지 않을까요? 강 영감은 도자기를 비교적 빨리 만들어냈고 민 영감은 작품 하나를 만들어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만큼 까다롭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민 영감은 왜 갑지가 목이에게 도자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했을까?

-그 당시에 도공들은 국가의 중요한 기술자들이었다고 했어요. 그때는 아들이 대를 잇게 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어요. 왜냐하면 도자기 만드는 일이 워낙 어려운 작업이라 여러 도공들이 그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생겼고 아무에게나 알려줄 방법이 아니었기에 아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어서 대를 이어가게 했다고 하는데요. 민 영감의 아들 '형규'는 죽었기 때문에 민 영감의 뛰어난 실력을 이어갈 후계자가 없었어요. 목이에게 '형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도자기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자 한 것은 목이를 이제 양 아들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도자가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목이가 줄포에서 송도까지 참외 모양 꽃병을 감도관에게 무사히 전해주고 온 것을 보고 충분히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도 될 것이라고 여긴 거 같아요. 그 어려운 일을 해냈기 때문에 앞으로 도자기 배우는 과정도 잘 이겨낼 거라고 보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줄포에서 송도까지 가는 게 민 영감이 목이라는 아이를 테스트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목이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고려 시대 도공들은 단순히 흙을 빚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국가의 중요한 공역을 수행하는 장인으로 인정받았는데요.

고려청자처럼 귀하고 섬세한 기술은 긴 시간의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데, 이걸 외부인에게 마구 알려줄 수는 없었을 거예요. 기술 유출도 막아야 했고, 또 그만큼 고도의 숙련이 필요했으니 계승의 안정성이 중요했을 거예요.

당시 대부분의 전문 기술이나 직업은 신분이나 가문을 통해 세습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가업으로 이어지면서 비법이나 노하우가 집안 안에서 전수되는 방식이었지요. 남자 위주의 사회였으니 자연스럽게 아들이 대를 잇는 경우가 많았을 거예요.

이런 환경에서 국가의 중요한 기술인 도자 기술도 철저하게 집안, 특히 아들을 통해 전승되면서 기술의 비법과 완성도를 유지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출처 : 뤼튼 AI

린 다 수 박 작가가 목이의 이름을 '형필'로 지은 이유가 있었지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민 영감의 아들 '형규'의 '형' 돌림자로 '형필'이라고 지은 것인데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치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월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책으로 수업을 할 예정이라, 이때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누어보자 얘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