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부터 정약용까지 고난 속에서 피어난 조선 7인방의 유배와 예술 이야기




마음에 남는 문장
p.57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많은 사람이 평소에 잊고 지냈던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다고 편지를 쓴다.
-김만중이 유배지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심에 놀랐고 나도 부모님에게 늘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p.65 읽는 사람이 황홀한 상상에 빠지게 한다.
-정작 자신은 유배되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기는커녕 그들의 상상을 돕게 하는 김만중이 좋았어요.
p.116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그 유명한 명언을 두고 과학자 정재승은 이렇게 말했다. "99퍼센트의 노력은 당연하고 1퍼센트의 영감이 중요한데, 노력을 엄청 많이 해야 영감이 떠오를 확률이 높아진다."
-이 문장을 읽고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노력을 해야 본전인데 정작 나는 노력도 하지 않고 공부량이 많다, 어렵다 등의 소리만 하니까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궁금한 질문과 대화
*차례에 나온 7번째 사람은 조희룡인데 왜 책표지(표지의 핑크 글씨)에는 '허균부터 정약용이라고 되어 있을까? 혹시 정약용이 더 유명해서 표지에 넣은 걸까? 이것 또한 일종의 차별이 아닐까?
*허난설헌은 왜 자신보다 못한 남편과 결혼해서 침울한 삶을 살다가 하늘로 갔을까?
*유배를 갔을 때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
*꼭 유배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조희룡과 비슷하게 신분에 상관없이 유배를 보냈을까?
*이들은 자신이 유명해질 것을 알았을까?
*아무리 왕과 친해도 유배당할까?
*무엇이 예술을 막을 수 있을까?
차례에 나온 7번째 사람은 조희룡인데 왜 책표지(표지의 핑크 글씨)에는 '허균부터 정약용이라고 되어 있을까? 혹시 정약용이 더 유명해서 표지에 넣은 걸까? 이것 또한 일종의 차별이 아닐까?
-정약용이 제일 유명한 사람이니까 출판사에서 일부러 그렇게 문장을 만든 것 같아요.
-저라면 허균부터 조희룡까지라고 하면 '조희룡'은 누구지?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사람들이 더 책을 보게 될 거 같은데요?
-그래도 정약용이라는 사람이 가장 알려진 사람이라서 '정약용도 유배를 갔어?' 하는 마음에 책을 더 보게 될 거 같아요.
-조희룡의 자손들이 보면 조금 서운할 것 같긴 해요.
-출판사에서는 책을 많이 홍보하고 팔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아요.
허난설헌은 왜 자신보다 못한 남편과 결혼해서 침울한 삶을 살다가 하늘로 갔을까?
-그 당시에는 자신의 결혼을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가야 했으니까 마음에 안 들어도 결혼을 안 할 수가 없었을 거 같아요.
-남편도 그리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허난설헌이 너무 뛰어나서 그 재능에 가려진 건 아닐까요?
-김성립은 아내가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나니까 자격지심이 있었을 거 같아요.
-허난설헌은 아버지가 사망하고 아들과 딸도 전염병으로 일찍 죽어서 살아갈 의지가 사라진 거 같아요.
-신사임당도 그렇고 그 당시 여자들은 능력이 뛰어나도 쉽게 드러낼 수 없어서 답답하고 힘들었을 거 같아요.
유배를 갔을 때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
-김정희는 위리안치형이어서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었지만, 바깥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건 가능했다고 나와 있어요. 정약용도 유배지에 있을 동안 18명의 제자를 양성해서 500권의 책을 펴낼 수 있었고요.
아무리 왕과 친해도 유배당할까?
-왕이 죽게 되면 친했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정리 대상이 될 거 같아요. 정조가 죽고 나서 정약용이 유배를 가게 된 것처럼요.
-왕과 반대되는 세력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왕과 친한 사람을 더 공격할 거 같아요. 그래야 왕이 힘을 덜 가질 테니까요.
이들은 자신이 유명해질 것을 알았을까?
-책을 남기고 예술 작품을 남기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예술 작품을 남겼다고 해도 그 작품이 뛰어나면 미래의 사람들도 그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정성을 담은 작품이라면 유명해지게 되어 있는 거 같아요.
-정약용은 "알아주는 사람은 적고 꾸짖는 자는 많으니 만약 1,000명이 인정해 주니 않는다면 횃불로 태워 버려도 좋다. 100세 이후를 기다리겠다."라는 글을 남겼잖아요? 그리고 사후 100년이 지나서 그가 남긴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생겼다고 했으니까 정약용은 책을 쓸 때 그런 가치를 책에 담아 놓고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기를 바랐을 거 같아요.
조희룡과 비슷하게 신분에 상관없이 유배를 보냈을까?
-조희룡은 신분이 중인이었는데 김정희의 최측근이었다는 이유로 3년간 유배를 떠났다고 했어요. 유배는 양반도 가지만 중인까지도 갈 수 있는 거 같아요.
-조선 시대 신분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출처 : 3분 전 블로그
양반- 나라의 일을 도우며 관리 군복무자로서 정치에 참여를 했다. 막강한 권력을 기반으로 넓은 토지와 노비를 보유할 수 있었다. 백성에게 땅을 빌려주고 소작료를 받았다. 군 복무 면제를 받았다.
중인- 양반의 밑에서 행정적인 업무를 돕거나, 향리나 토관 기술직 등의 직종에 종사를 했다. 상당히 높은 계층에 속했지만, 관직에 높이 올라갈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서얼 출신도 중인 계층이었다.
상민-주로 농민, 상인, 수공업자 등으로, 나라에 조세와 공납을 지불하는 백성들이 주를 이루었다. 주로 양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소작료를 내어야 해서 생활이 궁핍했다.
천민-부모 중 한 명이라도 노비인 경우 지식도 노비로 대우받았다. 노비, 숭려,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백정이 포함되었다.
꼭 유배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들은 평소에도 학식이 높은 분들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서 유배를 가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했을 거 같아요.
-유배라는 극한 상황이 더 많은 예술 작품을 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거라 생각해요.
-평소에는 나라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을 텐데 유배지에서는 시간이 너무 많기도 하고 책을 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힘겨움을 해소할 수 있어서 이런 상황이 더 많은 업적을 남기게 하긴 했을 거 같아요.
생각해 보기
책 속 인물(위기를 기회로 바꾼 조선의 예술가들)에게 그들을 대표하는 문장을 만들어 봅시다.



책 속 오류-가족 관계 오류

<유배도 예술은 막을 수 없어 p.146>

<유배도 예술은 막을 수 없어 p.147>
황사영은 정약용의 큰 형인 정약현의 사위입니다. 그러면 황사영은 정약용에게는 조카사위가 됩니다. p.147에는 정약용과 정약전이 황사영의 조카사위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옥에 티가 있어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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